보이지 않는 것의 가시화 - 권현진

2023-03-07

보이지 않는 것의 가시화

: 권현진 근작 《Visual Poetry Pixel Series》

권현진

지난 세기의 중심 과제였던 근대주의에 의한 미술은 21세기를 맞아 재사유를 필요로 한다. 가령 이전 세기의 미술에서 추상화란 지각 가능한 자연 이미지를 제거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환영을 배제한 평면으로 환원시키고자 했다면 이러한 의미의 환원주의 미술은 그 기반 자체를 재고해야 할 때이다. 재현과 서술, 그리고 환영을 지우고 비워나가는 패러다임의 연장이었던 기존의 미술은 시각적 시공간의 해체와 재구축을 통해 존재 가능한 세계의 이미지를 적극 창출하고 불가시적 이미지를 현존세계의 이미지와 융합하여 그 이미지의 가능성을 확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종래의 ‘본질’과 ‘형식’과 같은 관념으로부터 이미지를 해방시켜 그 과정에서 창발되는 ‘가상’이 현대 추상 이미지의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Visual Poetry》 시리즈는 자연의 이미지들에서 형식을 추출하는 추상이미지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맥락에서 용합과 혼성에 의한 추상 이미지를 다룬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 동안 빛을 봤을 때 안구에 맺히는 가상의 환영들을 시각적 이미지로 그려내려는 데서 출발한다. 이 과정에서 처음 의도와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가 창출되기도 하지만 더 많이 또 다른 시각적 무의식의 작동으로 인해 새로운 낯선 이미지들이 발현된다.《Visual Poetry》는 일차적 방식의 보는 방법이 아닌 감은 눈과 눈 표면으로 시각적 환상과 캔버스 밖의 가상까지 보여주기에 집중한 작품이다. 색의 배열과 움직임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나 한편의 서정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근작 《Visual Poetry Pixel Series》는 그간의 탐구 결과를 고도로 숙성시킨 최근 버전이다. 종래의 작품이 작고 섬세한 수소의 물방울이 윤무(輪舞)하는 세계를 형상화했다면, 근작들은 강열한 색조들을 정방형 입체의 ‘하드에지’(hard edge) 표면을 채우거나 이를 균질한 크기의 사각형의 셀로 축소시켜 사각들의 하드에지를 나열하는 시도를 한다. 《Visual Poetry Pixel Series》들을 통해서 단순한 구조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순환성에 의해 움직이는 듯한 시각적 환영이 자아내는 착시효과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는 마치 비잔틴시대 모자이크화나 고딕시대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채도 높은 색채와 이미지의 조각들을 이용하여 종교적 신성함과 신비로움을 극대화하고 강조했던 것 처럼 채도 높은 픽셀 조각들을 나열함으로써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의 조각들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시각적 착시효과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고 명상에 잠기게 하는 작업이 되기를 기대한다.

  픽셀 작품의 작업과정은 사각형의 틀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고농축 잉크와 물감을 붓고  칠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이 과정에서 색이 서로 만나고 섞이면서 독특한 화면을 자아낸다. 정사각 틀 안에서 작업한 물감을 굳히기 위해 우레탄을 섞어 며칠 동안 말리는 과정을 거친 후 틀 안에서 정사각의 물감 덩어리를 떼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사각 픽셀들을 다시 화면에 재조합하여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낸다. 계획적으로 화면을 구성하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솟아오르는 이미지대로 표현하는 작업과정을 거치며 처음 의도와는 다른 작품이 나올 때도 있는데, 이것은 무의식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추상화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면서 회화와 시라는 두 개의 장르의 융합을 시도하며, 회화, 입체, 미디어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