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7
이미지 탐험의 새 지평 : 보이지 않는 것의 가시화
미술학 박사 권현진
1-1. 요약
지난 세기의 중심 과제였던 근대주의에 의한 미술은 21세기를 맞아 재사유를 필요로 한다. 이전 세기의 미술에서 가령 추상화란 지각 가능한 자연 이미지를 제거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환영을 배제한 2차원 평면으로 환원코자 했다는 데 뜻이 있다. 예컨대 몬드리앙은 보이는 자연의 외관을 수평수직의 형식으로, 그리고 말레비치는 플라톤적 절대형태로 각각 환원하였다.
이제 이러한 의미의 환원주의 미술은 그 기반 자체를 재고해야 할 때다. 21세기 미술은 재현과 서술, 그리고 환영을 지우고 비워나가는 20세기 패러다임의 연장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의 미술은 우리시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주창하는 시간과 공간의 여분차원(extra dimension)으로 눈을 돌려 이미지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방향에서 재고해야 한다. 그 방향은 추상회화의 원조인 칸딘스키와 몽드리앙 그리고 뉴욕 추상표현주의가 지향했던 가시적인 자연을 개념적인 것으로 환원시키고자 했던 것과는 어쩌면 정반대의 방향에서 해법(지표)을 찾아야 할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분으로 존재하는 불가시적 세계의 이미지를 가시세계의 것으로 불러들여 이것들을 현존세계의 이미지와 융합함으로써 이미지의 가능성을 확장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보이는 세계의 시⋅공간의 해체는 물론 재구축을 빌려 존재 가능한 세계의 이미지를 적극 창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21세기 미술이 다루어야 할 이미지란 추상과 구상의 구분을 초극해서 종래의 본질이나 형식 같은 관념적 요소로부터 이미지는 해방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창발될 가상이 이미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1-2. 아이디어 면
나의 근작들은 이전과 같은 자연의 이미지들에서 형식을 추출하는 의미에서의 추상이미지를 다루지 않는다. 자연의 내용들을 비워가는 추상화가 아니라 그 역의 맥락에서 용합과 혼성에 의한 추상이미지를 다룬다.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단 눈을 감고 잠시 동안 빛을 봤을 때 안구에 맺히는 가상의 환영들을 시각적 이미지로 그려내려는 데서 시작한다. 이는 과거의 추상적 사고를 역으로 추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를 빌려 끝없는 구축과 해체, 재구축을 통해 융합과 확장을 빌려 창출할 수 있는 이미지를 선호한다. 이 과정에서 처음 의도와는 다른 새로운 이미지가 창출되기도 하지만 더 많이 또 다른 시각적 무의식이 작동함으로써 새로운 낯선 이미지들이 발현되기를 기대한다. 빛의 흐름, 색의 흐름, 물감의 흐름 등 새로운 배열을 시도하며 혼합하고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캔버스 안의 것만이 아닌 캔버스 밖에서 움직이는 여분의 것들을 보다 선호하게 된다. 이런 데서 예기치 않은 가상이 창출되기를 기대하기 위함이다.
근작들에 등장하는 주 이미지들은 그럼으로써 가상의 추상 이미지들이 주를 이룬다. 이것들은 현대 양자물리학의 끈 이론이 시사하는 여분차원에서 영감을 받아 컴퓨터를 써서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것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끈이 아니라 브라이언 그린(B. Green) 같은 초끈이론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양자적 진동으로 이루어지는, 요컨대 눈으로 볼 수 없는 가상적 끈의 진동 패턴과 에너지를 동반하는 가상의 끈들의 연결을 상징한다. 이는 물방울과 같은 거품효과들을 만들어 시각적 착시 효과를 주려는 시도를 포함한다. 이 이미지들은 현실 이미지에서 추상한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추상적 사고로부터 출발하여 변형과 융합을 거쳐 만들어지는 가상의 이미지들이다. 다양한 형태로 변형하고 재배치하여 만들어진 우리 시대의 추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들은 여러 형태의 다원적 세계 속에 존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나의 추상적 가상이미지는 관람객들의 상상과 무의식을 자극하여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명력을 유발할 것으로 기대한다.
1-3. 소재와 방법 면
가변적 추상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나의 시도는 입체회화작업과 미디어작업을 두루 병행하고 이들을 연계하고 융합함으로써 이미지의 경계를 확장하는 데 있다. 나의 <Visual Poetry>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입체회화작업은 변형 캔버스의 조작을 빌리기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에 굴곡을 주고 그 위에 색들을 칠하고 광택을 주어 고정된 평면에 유동적인 조각적 입체공간을 창출한다. 이는 평면의 2차원을 3차원의 복잡계로 확장하기 위함이다.
미디어작업은 영상이라는 매체적 특성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미지들을 계속해서 보고 있는 듯한 환영을 만들고자 하는 데 뜻이 있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추상적 이미지를 확장시켜 관람객들의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을 아울러 자극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미디어아트를 빌려 전통 이미지와 융합시키고 확장시켜 디지털 환경 안에서 아날로그 이미지를 수작업으로 담아내고자 하였다. 전통회화에서 보여주는 매체적 물질성과 테크놀로지를 융합하여 단지 기술과 예술의 결합이 아닌 예술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기반으로 미술의 확장성이 극대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Visual Poetry>는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아직 보지 못한 것 까지도 볼 것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감각만이 아니라 감은 눈과 마음의 눈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각적 환상은 물론 캔버스 밖의 세계와 가상까지 보여주고자 한 작품이다. 나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환상은 단지 시각적 지각으로만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시각적 지각뿐만 아니라 촉각적 지각으로도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의 원근법으로 그려진 공간만이 아니라 단일 시점으로 파악 될 수 없는 가변적이고 다양한 추상적 형태와 색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다. 단순히 감각적 시각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다양한 시점으로 시각을 자극하기 위해 촉각을 포함한 공감각(共感覺, synesthesia)을 빌려서 인식되어야 한다.
1-4. 예상되는 결과
나의 근작 <Visual Poetry> 시리즈는 이전 세기의 굳은 이미지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우리의 희망, 꿈, 비밀, 감정 등을 투영하는 거울이기를 기대한다. 색의 배열과 움직임에서 관람객들이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나 한편의 서정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나의 근작들은 회화와 시라는 최소한 두 개의 장르의 융합을 시사한다. 시적 표현효과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해 채도를 최소 7~8도로 높이고 색의 농도가 강한 하이크롬 색상을 사용했다. 물감의 가변적 표면효과나 재료의 물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얼룩이 거품과 같은 표면효과를 유발해서 추상표현이미지를 극대화하였다. 그럼으로써 강한 자극을 만들고 표현효과를 증대시키고자 했다. 고채도의 색면과 함께 색면들 사이에서 부상되는 거품효과는 종래의 추상화가 보여주는 단조로움을 깨뜨림으로써 표현효과를 증대시키려는 데 의의가 있다. 신비로운 느낌과 함께 시적 환영과 환상이 동반되는 결과가 여기서 창출될 것이다.
이처럼 근작들은 본다는 것의 의의를 과거의 그것과 배타적 입장에서 접근했다. 칸딘스키가 추상화를 발견했을 때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봤듯이, 우리 시대 또한 기존의 회화에서 학습했던 추상화가 아닌 그 너머의 세계로 것에서 추상회화의 판을 궁구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추상 세계에서 떠나 이것들의 해체와 재배치를 빌려 오늘의 다원적 세계를 창출해야 한다.